행복*발전소◇

행복 을 만드는 공장 .. 陳 弼

행福이 2007. 2. 2. 10:32

편향(偏向)과
극단의 불합리한 시대를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 소시민들은 극복해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행복에 대한 가치 기준입니다.

기득권자나 강자의 입장에서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단순무식 형의 논리를
그대로 적용한다면야 삶이
어려울 것도 복잡할 것도 없지만
이 세상은 빛으로만 가득
채워져 존재할 수도 없고...
구름 위를 걷듯 날이면 날마다
행복할 수만은 없습니다.
하여 행복을 찾거나 쫓는 행위는
늘 숨을 쉬고
있으면서도 공기를 찾아 헤매는
어리석음과 다를 바가 없을 겝니다.

내 집 근처 오거리는
도로가 막히거나 곧잘
신호대기에 걸리는데 유독
눈길을 끄는 한 노파가 있습니다.

그 노파가 언젯적부터
그 자리를 점거하고
있었는지 전혀 기억에 없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나는 오거리쯤 가면
그 노파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길 모퉁이의 공중전화 부스
옆에 자리를 펴고
나프탈렌이나 이쑤시개,
때밀이 타월, 수세미, 냄비받침..등
온갖 자잘구레한 물건들을
정돈하여 펼쳐 놓고
등받이 좌식의자에 앉아 있는
그 노파는 대기업의 사장님
부럽지 않은 풍모가 느껴집니다.

그 노파를 눈여겨
보기 시작한 동기는 푼수
같은 내 오지랖 탓입니다.
나는 허름한 대중식당에 갔을 때
식사 손님이 없으면 에이구,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들고
또 한파가 몰아 닥치면
노점 상인들이 걱정되고...
겨울 날씨가
봄날처럼 연일 포근하면
겨울 옷장사들을 걱정하여
내 형편을 뻔히 아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네 걱정이나 하라'는 핀잔과 함께
괴짜라는 소리를 잘 듣습니다.

하여, 칠십도 훨씬 넘겼을 노파도
'저 나이에 길거리에 나앉아
도대체 얼마나 벌까...
꼭 저렇게 해야만
생활이 되는 것일까...'
하는 안쓰러움으로 지켜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허나, 관심 깊게 지켜보면 볼수록
그 노파에게서는 어떤 여유가 느껴졌으며....
한번은 점심 무렵에 차창을 통해
그 노파의 도시락을 보게 되었는데
성찬이라 할 만큼 훌륭한 식사였습니다.
여자들은 대부분
자기가 먹을 음식을 공들여
준비하지 않으며
더욱이나 많은 나이에는
더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에
노파의 며느리와 딸이 저절로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손가락에 끼워진
두툼한 쌍 금가락지와
햇볕에 그을러
돋보이지 않을 뿐이지
그 입성이 남루하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그 노파에게는 ‘소일거리’가
필요한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그 노파는
무언가 쉼없이 일을 하면서
일생을 보냈기 때문에 일을
놓을 나이가 되어서도
자신의 일이 필요했을 지도
1모른다는 추론도 했습니다.

그 노파는 참으로 성실합니다.
대단한 업을 가진 양 대부분
아침 9시도 안 되어 전을 펴며
굵은 마디가 진 손은 참으로 부지런합니다.
먼지 털이개로 연신 물건 위에
올라 앉은 길 먼지를 털어 내고...
올망졸망한 전리품들의
위치를 바꿔봐야 달라질 것도
없건만 이리 저리
배치를 다시 하기도 하고...
때로는 붕붕거리는 소음을
스님의 독경 소리 쯤으로 여기는 듯
공중전화 부스에 기대
오수(午睡)에 빠져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한여름에는
땡볕을 피해 맞은편 사진관
앞 그늘에 몸을 숨기고 오가는
행인들을 구경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오랜 날
그 길목을 지나치면서
나는 노파의 정지된 듯한
그림에서
'느림'의 생기를 느꼈으며
노파가 행복한 삶을 산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우선은 비록
노상이기는 하지만
전을 펴고 장사를 할 수 있는
건강이 허락되고...
그렇게 매일
집을 나오니 더 넓은 세상과
사람들을 보며
그 나름의 철학이 깊어질 것이며
따라서 마음의 도를 닦게 될 것은
정한 이치일 것입니다.

나의 노모는
사람이 위를 쳐다보고 살면
한도 끝도 없으므로 나보다
못한 사람을 보면서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잘 하셨습니다.
세상살이가 만만찮다는 것을
아직 모른 채 다듬어지지 않은
새파란 꿈을
날세워 꾸고 있을 때에는
그 말씀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데...
세월이 가르쳐주기 훨씬 이전에
어머니의 그 말씀이 진리임을 깨달았다면
지금쯤 나는 행복을 만드는
공장의 주인이 되어
마음이 가난한 이들에게
풀향기 같은 기쁨을 많이
나눠주고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