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찍*이쁜글◇

늑대야 늑대야 - 허홍구

행福이 2012. 3. 21. 14:59

 

 

 

 

 

늑대야 늑대야 - 허홍구 

 

남자는 모두 도둑놈, 늑대라며
늘 경계를 하던 동창생 권여사로부터
느닷없이 소주 한잔 하자는 전화가 왔다
"어이 권여사 이젠 늑대가 안 무섭다 이거지"
"흥 이빨빠진 늑대는 이미 늑대가 아니라던데"
"누가 이빨이 빠져 아직 나는 늑대야"
"늑대라 해도 이젠 무섭지 않아
나는 이제 먹이감이 되지 못하거든"
이제는 더 이상 먹이감이 되지 못해
늑대가 무섭지 않다는 권여사와
아직도 늑대라며 큰소리치던 내가
늦은 밤까지 거나하게 취했지만
우리 아무런 사고 없이 헤어졌다
그날 권여사를 그냥 집으로 돌려보낸 것이
두고두고 후회가 되었다
아- 나는 아직도 늑대가 분명하다

 

아지매는 할매되고 - 허홍구

 

염매시장 단골술집에서
입담 좋은 선배와 술을 마실 때였다
막걸리 한 주전자 더 시키면 안주 떨어지고
안주 하나 더 시키면 술 떨어지고
이것저것 다 시키다보면 돈 떨어질 테고
그래서 얼굴이 곰보인 주모에게 선배가 수작을 부린다
"아지매, 아지매 서비스 안주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주모가 뭐 그냥 주모가 되었겠는가
묵 한 사발하고 김치 깍두기를 놓으면서 하는 말
"안주 안주고 잡아먹히는 게 더 낫지만
나 같은 사람을 잡아 먹을라카는 그게 고마워서
오늘 술값은 안 받아도 좋다" 하고 얼굴을 붉혔다
십수 년이 지난 후 다시 그 집을 찾았다
아줌마 집은 할매집으로 바뀌었고
우린 그때의 농담을 다시 늘어놓았다
아지매는 할매되어 안타깝다는 듯이
"지랄한다 묵을라면 진작 묵지"

 


총알보다 빠르다 - 허홍구 

 

여자 홀리는데 날쌘 친구가 있었다.
우리들은 그를 총알이라 불렀다
총알이 점찍어 둔 여자를
내가 낚아 챈 일이 있고부터
친구들은 나를 번개라 불렀다
30여년이 지난 어느 날
대폿집에 몇이 모여 옛날을 이야기 하다가
지금도 총알보다는
번개가 더 빠르다고 강조하였다
총알이란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이젠 우리들 보다 훨씬 더 빠른
세월이란 놈이 있다고
우리는 벌써
여섯 고개를 넘어서고 있었다  

 

부음을 받고 -  허홍구 


이른 봄날
눈부시던 목련은 기별도 없이 가고
내 동갑내기 스님 인월은
무거운 몸뚱이 벗어놓고
급히 떠났다는 전갈이다
분별없는 중이 되겠다며
깎은 머리도 기르고
작업복에 땀을 흘리고
때로는 세상에 취해 비틀거리기도 하더니
남아있는 몸뚱어리와
땅 바닥에 내려앉은 꽃은
그 흔적을 지우며
묵언법문중이다
내 몸이 곧 나인 줄 알았다가
그것마저 내 것이 아닌 줄 알겠네
모두 다 홀랑 벗어 던지고
가볍게 떠나야 할 때
나는 어찌 꽃잎으로 갈까
진흙 투성이의 맨발로

 

-먼저 간 인월스님에게-

사람의 밥이 되어 - 허홍구

 

하루가 전부인
하루살이의 일생도
길바닥에 떨어져 밟히는 나무 이파리도
결코 가벼운 목숨이 아니오니
나, 작은 한 톨의 쌀로
이 세상 몸 받아 올 때
하늘과 땅, 밤과 낮
비바람이 있어야 했다
쌀 한 톨이 나를 키울 때,
농부의 손마디가 굵어지고
허리가 휘었다
작은 이 몸
이제 사람의 밥이 되어 나를 바치오니
부디 함부로 하지 말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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