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찍*이쁜글◇

첫눈에 관한 시 모음

행福이 2023. 11. 30. 17:02

첫눈 - 김남주


첫눈이 내리는 날은
빈 들에
첫눈이 내리는 날은
캄캄한 밤에도 하얘지고
밤길을 걷는 내
어두운 마음도 하얘지고
눈처럼 하얘지고
소리 없이 내려 금세
고봉으로 쌓인 눈앞에서
눈의 순결 앞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는다
시리도록 내 뼛속이
소름이 끼치도록 내 등골이.

첫눈 - 이해인


함박눈 내리는 오늘
눈길을 걸어
나의 첫사랑이 신 당신께
첫 마음으로 가겠습니다
언 손 비비며
가끔은 미끄러지며
힘들어도
기쁘게 가겠습니다
하늘만 보아도
배고프지 않은
당신의 눈사람으로
눈을 맞으며 가겠습니다.

첫눈 - 나태주


나 아직 철이 없어
첫눈 내리는 날 첫눈 왔다는 핑계로
친구 불러내 소주 한잔하고
날 어두워서야 집에 들어왔다
옷을 받으며 아내가 조용히
나무라듯 말한다
나, 당신 걱정하는 거 당신도 알지요?
늙은 아내의 말이 첫눈이다
그녀의 마음이 첫눈이다.

첫눈이 오네 - 박인혜


첫눈이 오네
첫눈이 온다고
마음 전할 자 있다면
외롭지 않겠지
첫눈이 온다고
소식 전해올 사람 있다면
행복하겠지
눈은 눈이 아니다
마음으로 내려앉는
차가움이고
슬픔이다
눈은 눈이다
창밖에 눈은
하얗게 감싸주고
보듬어주니까
첫눈이 온다.

첫눈 - 이정하 


아무도 없는 뒤를
자꾸만 쳐다보는 것은
혹시나 네가 거기 서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이다.
그러나 너는 아무 데도 없었다.
낙엽이 질 때쯤
나는 너를 잊고 있었다.
색 바랜 사진처럼
까맣게 너를 잊고 있었다.
하지만 첫눈이 내리는 지금,
소복소복 내리는 눈처럼
너의 생각이 싸아하니
떠오르는 것은 어쩐 일일까. 
그토록 못 잊어하다가
거짓말처럼 너를 잊고 있었는데...  
첫눈이 내린 지금, 
자꾸만 휑하니 비어 오는
내 마음에 함박눈이 쌓이듯
네가 쌓이고 있었다.

첫눈 - 김용택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던 이름 하나가
시린 허공을 건너와
메마른 내 손등을 적신다.

첫눈 - 서지희


신기함에 첫눈을 챙겨보던 사람들
뛰쳐나와 첫눈 속을 걸어보던 사람들
첫눈이 아닌 약속을 기다리던 사람들
사람들, 쌓여가는 눈을 처음 본
겁이 없던 사람들
두 번 다시
이 겨울을 좋아하지 않으리.

 첫눈 오는 날 만나자 - 안도현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어머니가 싸리 빗자루로
쓸어 놓은 눈길을 걸어
누구의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순백의 골목을 지나
새들의 발자국 같은
흰 발자국을 남기며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러 가자
팔짱을 끼고 더러 눈길에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가난한 아저씨가 연탄 화덕 앞에
쭈그리고 앉아 목장갑 낀
손으로 구워 놓은 군밤을
더러 사 먹기도 하면서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눈물이 나도록
웃으며 눈길을 걸어가자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만이
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
세상에 눈이 내린다는 것과
눈 내리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큰 축복인가?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커피를 마시고 눈 내리는
기차역 부근을 서성거리자.

첫눈 내리는 날 - 이재봉


낙원동 국밥집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밥알 같은 흰 눈이
유리창에 달라붙는다.
흰 눈 같은 밥알이
허기 속으로 사라진다.
아가, 배고프자.
사르르 추억의 문을 열고 어머니가
고봉밥 한 상 가득 내오신다.

첫눈  - 강은교


첫눈이 내린다
흙에 닿으면 흙으로
눈물로 닿으면 눈물로
내리는 족족 녹으며 자꾸 내린다
웬 슬픔들 여기엔 이리도 많은지
동구 밖 넓은 길 훠이훠이 떠돌다가
더는 몸 비빌 곳 없어
찾아오신 넋들
구름 위에서 구름이 부서진다
바람 앞에서 바람이 부서진다.

첫눈 오는 날 - 곽재구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하늘의 별을
몇 섬이고 따올 수 있지
노래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새들이 꾸는 겨울 꿈같은 건
신비하지도 않아
첫눈 오는 날
당산 전철역 오르는 계단 위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
가슴속에 촛불 하나씩 펴 들고
허공 속으로
지친 발걸음 옮기는 사람들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다닥다닥 뒤엉킨
이웃들의 슬픔 새로
순금 빛 강물 하나 흐른다네
노래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이 세상 모든 고통의 알몸들이
사과꽃 향기를 날린다네.

첫눈 온 날이면 - 권경업


첫눈이 오고
해맑은 순이의 눈처럼
아침이 밝아
뽀득뽀득 뽀드득
사박 뽀드득
수줍음으로 내딛는
백두대간의 첫 발자국
파르르 가슴 떨리는
열여덟 순이가
처음 밟아 보는
그리움의 소리.

첫눈 - 김경미


마침내 그대 편지가 오고
천천히 밖으로 나선다
하늘이 낮고 흐리고
어둑하니 자꾸 뒤돌아본다
무엇을 하고 싶은 대로
다했고 무엇을 못했을까
뱀의 머리 위를 지나듯 살라 했건만
낙엽 밟듯 살아왔을까
선한 눈빛이 가장 깊은 것인 줄
이제야 알겠거니
너무 많이 화를 내거나 울어왔던가
생각할수록 시간이여 미안하다
미안하다는데 창 밖으로
문득 첫눈 쏟아지네
희디흰 형광가루들 순간
점등되는 지상
낮고 흐린 하늘이 떨어지면서
저리 환한 눈송이
되는 이치를 아무래도
그대와 걸으며 생각하노라면
첫눈 밟듯 살다 보면
삶은 거저 내준 게 처음부터
너무 많았다고 따뜻한 눈물 글썽여지리라.

첫눈 - 김수목


깨어진 얼음덩이가
풍덩거리는 저수지 위를
얼음조각만 밟고
통통 뛰어 건너편 산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고라니를 보았다
순간처럼,
빠르게 물수제비를 뜨듯,
가볍게 몸을 날려
저수지를 건넜던 것이다
저렇듯 가벼운 몸짓으로
내 마음속에 첫눈이 내린다
하늘의 공기방울을 밟으며
내 마음을 통통 가로질러 온다.

첫눈  - 김윤희


오늘도 너의 힘으로 나는 걷는다
소식 끊인 지 석 달 열흘
그 가을은 이제 겨울이 되었다
아직도 아무 소식은 없지만
첫눈 오는 오늘도
너의 힘으로 나는 걷는다
내리는 눈은 머리 꼭대기를 지나
가슴으로 뜨겁게 뜨겁게 쌓이고
가슴에 쌓인 눈물 차갑게 녹아서
물이 되고 드디어
볼 수도 없이 날아가 버리지만
오늘도 나는 잃어버린 너의
힘으로 나는 걷는다.

첫눈 생각 - 김재진


입김만으로도
따뜻할 수 있다면 좋겠다.
기다리는 눈은 안 오고
손가락만 시린 밤
네 가슴속으로 내려가
너를 깨울 수만 있다면 나는
더 깊은 곳 어디라도 내려갈 수 있다.
종소리에 놀란 네가 잠에서 깨고
잠옷바람으로 언뜻 창 밖을 내다볼 때
첫눈 되어 내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반색하며 기뻐하는 너를 위해
이 세상 어디라도
쌓일 수만 있다면 좋겠다.
햇빛에 녹지 않는 응달이 되어
오래도록 네 눈길 끌었으면 좋겠다.

첫눈 - 문병란


첫눈이 내리는 밤이면
사내들은 모두 예수가 되고
첫눈이 내리는 밤이면
여자들은 모두 천사가 된다
여보게 우리도 이런 밤
소주 몇 잔 비우고 조금 취해
모닥불 가에 언 손 비비며
쓸쓸한 추억 하나 만들어볼까
만 원짜리 한 장에 꿈을 달래고
포실거리는 눈발에 맞춰
여보게 우리도 첫눈 밤 같은
사랑 하나 만들까
그립다
첫눈이 내리면 먼데
마을 하나 둘 등불 꺼지고
지금쯤 그리운 사람은
혼자서 외로이 잠이 드는데
창가에 기대어 먼데
여인의 발자국 소리 엿들어 볼까
이런 밤 우리도 고요히
손 모아 촛불 하나 지킬까.

첫눈  - 주응규


첫눈이 내리는 날이면
아득한 곳에서 하얗게 새하얗게
소녀가 부르는 것 같아
추억 속을 걷고 있네요
언젠가 그 언젠가
나를 위해 철없이 흘리던
소녀의 애달픈 눈물이
눈송이로 흩날리네요
못 잊어 못 잊어서
가슴 깊이 담아 두어야 했던
사랑의 밀어가
눈꽃을 피우네요
옛날 그 옛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메마른 앙가슴에
꽃 물을 들이네요.

첫눈 속의 그리운 님 - 박윤자


첫눈의 반가움은
설렌 마음 달래주듯 소리 없이
다가와 앙상한 나뭇가지엔
첫눈으로 꽃 피우고
엄연히 높은 산 첫눈으로
가득 안고 자연 열등의식을
아름다움으로 표현하네
님 계신 높은 산등선
높은 곳을 향해 망연자실하게
바라보고 첫눈 내린 이 순간
얼마나 고요하고 적막할까?
밤이 으슥한 이 시간
첫눈 속에 님 향기가 여여하게
퍼져 온다.
소리 없이 님 모습 첫눈 속에
비칠 때 밝은 미소로 님 모습
살며시 포용하네
무언의 침묵 속에 강하게
용솟음치듯 첫눈은 마음의
심금을 울리고
첫눈은 소리 없이
소복소복 쌓여만 가네.

첫눈 - 박인걸


첫눈을 맞으며
마냥 좋아 날뛰던
그 시절 추억도
이제는 희미한 그림자로
황혼이 내려앉아
찬바람에 뼈가 시린
수척한 나그네는
눈이 와도 감격이 없다.
가로등 언저리에
벌떼처럼 나는
순백의 눈발을 볼 때
그녀를 떠올리며
가슴 설레던
심장의 고동소리 대신
이제는 눈길을 걸으며
숨이 찰뿐이다.

첫눈 내리는 날 - 박재성


기다림이 있어서인가
바람 없는 골목에
눈부심으로 내리는 눈
손 부끄러워
입 벌리고 맞았던 시절
한 송이 두 송이
긴 눈썹 위에 쌓이면
붉은 볼 위에서 망울지던 날
눈의 요정처럼
팔 벌려 하늘을 품고는
네게 열어둔 가슴 안으로
날아들던 열셋 순정
눈에 젖은 날개가 마르기 전에
가슴을 닫고 품었어야 할
첫사랑인데
순수함만큼이나 서툴렀던
풋사랑으로
날개 마르고 남은 물방울만
가슴에 남기고 날아갔지
또 눈 내리는 날에
눈을 들어서
내리는 눈 반기다
가슴에 남은 물방울이
눈으로 흐를 것 같은 하얀 날.

첫눈 - 서정윤


보고 싶은 마음보다 먼저
먼저 눈발이 날린다.
낙엽 모이던 금호강변 어디
지금쯤
그대는 내 속에 앉는다.
키 큰 미루나무 빈 가지에
올해 깬 까치가
자꾸만 설레고
맨발로 달려오는 소식들
내 마음 먼저 반갑다.
그리운 마음 그 어디서
눈발 날려 부른다.

첫눈  - 송선애


깻단 위에 눈이 내렸다
깨알 같은 말이 쏟아졌다
첫눈 오는 날
약속이 유효하다고
새가 발자국을 남겼다
기억을 털어 낸 들판
전율의 틈으로
깨꽃 같은 소식이 다녀갔다.

첫눈 - 송해월


고인 눈물까지도
모조리 퍼낼 듯한 바람
눈치 없이도
불어대더니 눈이 내리시네
문간 옆 꽃단풍 채
지지도 않아 저 홀로 붉은데
지상(地上)에 속속 당도하는
저 흰 버선발의
고요한 방문(訪問)
정결하고 아름다워라
오늘은 나도, 내 사는 일에만 바빠
아무런 기미(機微)도
눈치챌 수 없었네.

첫눈 오는 날 - 양전형


초등학교 운동장
여자아이 여럿
발을 동동거리며 손가락에
입김을 불어내고 있다
아이들 입에서 나오는
하얀 나비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세상이 하얘지도록
아이들이 집에 갈 생각이 없으니
나비들도 멈추지 못한다
그만하면
나비가 없어질 만도 한데
쉬지 않고 나오는 아이들의
하얀 입김 너희들은 참,
나비가 많은 아이들이로구나.

우리 첫눈 오는 날 만나자 - 오광수


우리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온 세상이 우리 둘만의 세계가 되어
나의 소중한 고백이
하얀 입김에 예쁘게 싸여
분홍빛 너의 가슴에선
감동의 물결이 되고
나를 바라보는 너의 맑은 두 손 속에
소망하던 그날의
모습으로 내 모습이 자리하면
우리들의 약속은
소복소복 쌓이는 사랑일 거야.

첫눈 오던 날 - 용혜원


첫눈 오던 날 새벽에
가장 먼저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고 싶은 것처럼
그대에게 처음 사랑이고 싶습니다
삶의 모든 날들이
그대와 살아가며
사랑을 나눌 날들이 기를
꿈꾸며 살아갑니다
늘 간절한 마음으로
그대를 위하여
두 손을 모읍니다
그대를 축복하여 주시기를
늘 아쉬운 마음으로
살아가기에
그대에게 은총이
가득하기를 원합니다.

첫눈 - 이문구


오늘 온 눈은 첫눈
반가운 함박눈

마당에 두 줄
표주박 무늬
친구 부르러 나간
아기 발자국

우물가에 흐트러진
은행잎 무늬
뜨물 마시고 들어간
오리 발자국.

첫눈 오는 날 우리 만나자 - 이문조


첫눈 첫사랑 첫 키스 첫 경험
처음만큼 설레는 것도 없다
눈 내리는 고요한 이 밤
첫눈 올 때 우리 만나자는
희미한 옛날의 약속 떠올리고
첫사랑의 그녀를
가슴 깊은 곳에서 꺼내보고
첫 키스의 달콤하고 황홀한
솜사탕을 다시 핥아 본다
첫눈 오는 날 우리 만나자는
그 약속 아직도 유효한지
달려가고만 싶은 소년의 마음
설레는 첫사랑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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