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사랑 - 이정하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닐 듯싶은데
난 그때마다 심한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고
낙엽이 떨어지고 해도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나에게는 머언 나라의 종소리처럼 느껴집니다
한때는 나에게도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지요.
사랑한다
사랑한다
이야기할 수 없는
당신들의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실 때
분식집 구석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그런 여자였지요.
공무원도 해보고 사무실에도 있어 보았지만
그 돈으로는 동생들 학비조차 되지 않더라고
밤마다 흠뻑 술에 젖는
그런 여자 였지요.
그녀를 만나고서부터
내겐 막니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막니가 생겨나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을
그녀에게서 느꼈을 때
그녀는 이미 먼 길 떠난 뒤였지요.
사랑이라는 말은
생각할수록 부끄럽습니다.
숲속 길을 둘이 걷고
조용한 찻집 한 귀퉁이에 마주 앉아
귀 기울이며
이야기하는 것이
사랑의 전부가 아님을 믿습니다.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주어도
채울 수 없는 사랑의 깊이를
아직 난 잘 모르고 있으므로
내게 아픈 막니를 두고 떠나간 그 여자처럼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감히 말할 수 없습니다.
언제나 기댈 수 있게
한쪽 어깨를 비워 둘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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