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내고장△

[스크랩] 성미산 마을축제’에 가다

행福이 2008. 7. 21. 17:29

“뭔 일 났어?”
“마을잔치가 있어요. 아침 드시고 놀러나오세요”

6월 7일(토) 오전 9시. 이른 아침부터 서울 마포구에 자리한 성미산 자락이 꽹과리와 장구 소리로 들썩거린다. 아침 운동차 성미산에 오른 주민들은 산자락을 타고 오르는 풍물소리에 귀가 번뜩인다. 6일 개막한 ‘2008 성미산 마을축제’가 본격적인 마을행사를 앞두고 마을을 지키는 성미산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오르는 길이다. 운동을 하던 어르신들의 입에서 “얼쑤”, “좋다”는 추임새가 흘러나오고 풍물패는 그 흥을 받아 더욱 신명나는 굿판을 벌이며 산신령들을 깨운다.

산이 울리는 풍물 소리에 영기(令旗, 깃발)가 열리고 당산제가 시작됐다. 차려놓은 상에 술을 올리고 성미산 마을의 공동체 문화를 위해 조직된 ‘사람과 마을’의 곽흥석 대표가 축문을 읽었다. 지난 2001년 배수지 사업 논란 이후 최근 다시 개발문제로 위태로워진 성미산을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 지켜낼 수 있도록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7일 오전 9시. 당산제를 지내기 위해 성미산 정상오른 풍물패들이 굿판을 위해 길놀이를
하고 있다.
성미산은 지난 2001년 서울시가 산에 배수지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개발 위기에 놓였다. 하지만 성미산을 지키기 위한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힘을 모으기 시작하면서 ‘성미산투쟁’이 확산되기 시작했고, 3년 여의 질긴 투쟁 끝에 서울시는 2003년 배수지 건설 계획을 포기했었다. ‘성미산 마을’ 주민들의 힘으로 성미산을 지켜냈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 성미산 땅을 소유한 홍익재단이 홍대 부설 교육시설을 성미산자락으로 옮기겠다고 밝혀 성미산은 다시 개발 위기에 놓여있다. 이번 마을축제는 마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마을 잔치이면서 동시에 이러한 성미산 문제를 주민들과 공유하고 함께 풀어가기 위한 소통의 자리이기도 하다.

오전 10시 30분. 당산제를 마치고 마을로 내려오니 골목마다 축제 준비가 한창이다. 핑크 색 천을 두른 천막이 골목을 따라 줄줄이 들어서고, 각각의 천막에서는 마을 잔치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준비되고 있었다. 성미산 동식물을 찍은 사진전 《꾀꼬리가 사랑한 성미산》에는 성미산 아이들이 찍은 사진들이 걸렸고, ‘친환경먹거리’ 코너에는 성미산 어린이집 엄마 아빠들이 요리실력을 뽐내느라 구슬땀을 흘렸다.

성미산차병원과 네모공방은 친환경 소재를 통해 서랍과 책장을 만드는 공방 ‘뚝딱뚝딱 나무랑 놀자’를 열었고, 성미산에 위치한 ‘숲속작은도서관’은 골목으로 자리를 옮겨 아이들이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신나는 책 놀이터’를 만들었다. 모두 36개의 프로그램들이 골목에 들어서고 있는 중이었다.

오전 11시. 골목을 따라 줄줄이 펼쳐진 부스에서 아이들과 나온 엄마들이 '숲속작은도서
관'에서 준비한 책을 살펴보고 있다.
문화와 예술, 놀이가 어우러진 교육을 실현하고 있는 '신나는 문화학교'가 준비한 공작체
험에 참가하고 있는 아이들 모습.

물론 이렇게 행사 프로그램들이 골목 안으로 들어오다 보니 주민들과의 마찰도 적지 않았다. 골목 입구에 차량이 통제되자 이동이 불편해진 주민들이 불평을 토로했고, 집에서 쉬고 있던 주민들은 골목에서 울리는 풍물 소리에 놀라 항의를 하기도 했다. 지난 해에는 마을 앞 도로가 통제돼 ‘차 없는 길’을 만들어 행사를 진행했지만 올해는 몇몇 주민들의 반발로 ‘차량통제’가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올해 행사는 성미산에서 전야제 행사를 하고, 마을 골목과 학교에서 행사를 진행하게 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 몰려 사는 도심에서 이런 불평불만이 없을 리 없었다. 행사 집행위원회 쪽에서는 마을축제를 연기하면서까지 주민들을 설득하고 협조를 구하는 과정을 거쳤지만 마을 모든 사람들의 협조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도 성미산 마을축제가 공동체 문화를 바탕으로 주민들이 소통하고 참여하는 축제로 거듭나게 되는 하나의 과정일 것이다. 

마을에서 ‘짱가’로 통하는 유창복 축제 집행위원장은 “많은 사람이 된다고 해서 한 사람의 의견을 무시할 수는 없다. 8년을 진행하는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고 설득하고 양해를 구해왔다.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일이지만 이렇게 다툼과 설득, 양보와 이해 속에서 주민들을 더 알아가고 소통의 폭을 넓히는 시간이 되고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마을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길놀이가 시작되자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골목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나이 지긋한 할머니 할아버지에서부터 유모차를 타고 엄마아빠와 나온 아기 주민까지 엄마, 아빠, 손자 등 가족들이 참여한 마을잔치에 빠질 수 없었다. 

아이 둘을 데리고 축제에 참석한 이설영 주부는 “프로그램을 보고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 참여했다”면서 “지역의 다른 큰 축제들보다 알차고 유익한 프로그램이 많았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차 걱정 없이 마을을 뛰어다니며 친구들을 만나고 놀 수 있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오후 2시. 우리마을 '꿈터'에서 택견을 배운 지역 아이들이 주민들의 열렬한 호응 속에서
 택견 대련을 펼쳤다.
오후 3시. 성미한학교에서 진행된 즉흥극 <시끌벅쩍 우리동네>을 공연한 극단 '목요일
오후 1시'(왼쪽)가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후 2시. 골목과 골목이 교차되는 광성슈퍼 앞 사거리에 무대가 마련됐다. 중앙 무대에서 ‘택견 대련’이 있을 예정이라는 광고방송이 나오자 사람들이 무대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마포연대에서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교육을 통해 운영하는 ‘꿈터’에서 택견을 배우는 학생들이 동네 주민들 앞에서 시범을 보이기 위해 나선 것이다.

방송이 나가기 무섭게 사거리 무대는 주민들로 가득 메워졌고, 성미산학교 체육교사이면서 아이들에게 택견을 가르치고 있는 ‘홍표사부’의 사회로 대련이 시작됐다. 대련 출전이 처음인 초등학교 1학년생 참가자들은 연신 헛발질을 해대며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했고, 꼬마 참가자들과 다르게 고등부 참가자들은 멋진 기술을 선보이며 상대를 제압해 보는 사람의 손에 땀을 쥐게 했다.

그렇게 흥미진진한 ‘택견 대련’이 끝나고 성미산학교에서는 극단 ‘목요일 오후 1시’의 즉흥극 <시끌벅적 우리동네>가 공연됐다. ‘목요일 오후 1시’는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며 주민들이 쏟아내는 ‘마을 화장실 이야기’, ‘육아교육의 어려움’, ‘책장 만들기’, ‘공동체마을’ 이야기를 하나하나 즉흥극으로 풀어내 큰 박수를 받았다. 관객들은 ‘즉흥극’이라는 생소함에 처음에는 말문을 떼지 못하다가 사람들의 이야기가 공연으로 펼쳐지는 것을 보면서 후반에는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즉흥극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오후 5시. 골목에 펼쳐졌던 천막들이 하나 둘 정리되기 시작했다. 골목 행사가 끝나고 마을축제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주민동아리 공연 ‘즐거운 인생’이 성서초등학교에서 주민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을 축제에 참가하며 자연스럽게 구성된 마을 ‘문화예술동아리’들이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주민들 앞에서 선보이는 자리다.

오후 5시, 주민 동아리 공연 '즐거운 인생'이 성서초등학교 무대에서 진행됐다.

M step 댄스아카데미의 화려한 댄스와 청소년밴드 ‘Gilaffe’의 멋진 공연으로 무대가 열렸고, 연남동사무소한국무용반의 한국무용 공연과 마을연극단 ‘무말랭이’의 공연도 펼쳐졌다. 주민들의 열렬한 호응 속에 동아리 공연이 끝이 났고, 이후 8시부터는 골목길 영화제가 진행됐다. 성미경로당에서는 한국고전영화 <마부>가 상영됐고, 성미산어리집마당에서는 어린이를 위한 단편 애니메이션이 상영됐다. 또 성미산학교 앞 골목에서는 마을주민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가족>이 상영됐다.

저녁 10시. 마을주민이 직접 기획하고, 준비하고, 참여한 ‘2008 성미산 마을축제’는 그렇게 저물어갔다. 해질 무렵 성미산 골목을 빠져나오자 하루 종일 딴 세상에서 놀다온 듯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다시 돌아가기에는 늦은 시간, 카메라에 담긴 성미산 마을 사람들을 행복 가득한 얼굴들을 확인하며 집으로 향하는 발길을 재촉했다. 

 

편집 : [위지혜]

출처 : Happy-eye (마포구 주민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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