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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기는 것과 나누는 것 - 이명화

행福이 2011. 10. 31. 17:58

 

 

 

  빼앗기는 것과 나누는 것 - 이명화

 

어느 아가씨가 공원벤치에 앉아
고즈넉이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 노신사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조금 남아 있는 책을 마저 보고 갈 참 이었습니다.
방금전 가게에서 사온 크레커를 꺼내어 하나씩 집어 먹으며
책을 읽어 나가기 시작했고 시간이 얼마쯤 흘렀습니다.

크레커가 줄어가는 속도가 왠지 빠르다 싶어 곁눈질로 보니,
아니!? 곁에 앉은 그 노신사도
슬며시 자기 크레커를 슬쩍슬쩍 빼먹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니 이 노인네가..."
화가 은근히 났지만 무시하고 크레커를 꺼내 먹었는데,
그 노신사의 손이 슬쩍 다가와 또 꺼내 먹는 것이었습니다.

눈은 책을 들여다 보고 있었지만 이미 그녀의 신경은
크레커와 밉살 스러운 노신사에게 잔뜩 쏠려 있었습니다.

크레커가 든 케이스는 그 둘 사이 벤치에서 다 비어갔고,
마지막 한 개가 남았습니다.

그녀는 참다못해 그 노신사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뭐 이런 웃기는 노인이 다 있어?" 하는 강렬한 눈빛으로
얼굴까지 열이 올라 쏘아 보았습니다.

그 노인은 그런 그녀를 보고 부드럽게 씨익 웃으며
소리없이 자리를 뜨는 것이었습니다.

별꼴을 다 보겠다고 투덜대며
자리를 일어 나려던 그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녀가 사가지고 온 크레커는
새 것인 채로 무릎위에 고스란히 놓여져 있었습니다.

자신이 그 노신사의 크레커를
집어 먹었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깨달았고,
오히려 자기 것을 빼앗기고도 부드럽게 웃던 노신사.
하지만 그 노신사는 정신 없는 그 아가씨에게
크레커를 빼앗긴게 아니고, 나누어 주었던 것입니다.

제 것도 아닌데 온통 화가 나서
따뜻한 햇살과 흥미로운 책의 내용 조차 잃어버린
그 아가씨는
스스로에게 이 좋은 것들을 빼앗긴 것입니다.

이러한 차이가 오백원 짜리 크래커가 아니라
아주 중요한 일에 결정적이고 치명적인
상황을 만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

"빼앗기는 것과 나누는 것"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