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갤러리♧

구스타프 클림트 (Gustav Klimt)

행福이 2015. 6. 29. 15:24

 

구스타프 클림트 (Gustav Klimt)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1862년7월14일 - 1918년 2월 6일)는

오스트리아의 화가이다..
관능적인 여성의 육체를 주제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1897년 ‘빈 분리파’를 결성하여 반(反) 아카데미즘 운동을 하였다.
1862년 7월 14일 ~ 1918년 2월 6일


경력
1917년 "'뮌헨 예술 아카데미 "비엔나 예술 아카데미' 명예회원으로 선출"


수상
1911년 로마 국제 미술전 금상 수상

 

구스타프 클림트는 1862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7형제 중에 둘째로 태어났다

아버지 에른스트 클림트는 보헤미아에서 금을 세공하는 세공사 였고

어머니 안나 핀그터 클림트는 결혼전에 가수 였다. 클림트는 금세송사 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황금색을 잘 다루는 화가가 되었다. 하지만 클림트의 집은

 너무나 가난하여 좋은 학교에 갈 수 없었고 공업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가난을 극복한 화가의 길

클림트는 공업학교에서 공부를 잘해서 '비엔나 장식미술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학교에 다니면서 라이헨 베르크 국립극장의 천장 벽화를 그리게 되어

화가로서 인정을 받고 학비도 낼 수 있게 되었어요.

1883년 학교를 졸업한 그는

동생 에른스트, 친구 마츠와 함께

부크 레슈티 국립극장, 리예카 국립 극장 장식,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의 대계단 장식 등을 하며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1890년대에는 비엔나 구국립극장의 실내장식을 해서 '황제대상'을 받기도 했다.

1892년 그의 예술적 동지였던 동생 에른스트가 사망하고 그 뒤를 이어

아버지 마저 사망하자 클림트는 정신적 위기를 겪게 되었다 .

또 남은 가족들의 생계마저 책임을 져야하는

어려운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갓들은 클림트가 화가로서 성장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분리파의 탄생

1897년 클림트는 미술가 협회와 나라가 틀에 박힌 예술과

돈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클림트는 '새로운 뮌헨 건설'을 꿈꾸며 전통적인 예술에 반대하는

'분리파'를 만들었고 분리파 회원들과 함께 그림을 전시했다 .

이들은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룬 종합예술 즉 '총체적 예술'을 주장하였다.

 예술은 따로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뭉쳐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예술과 생활, 건축과 장식처럼 모든것이 조화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황금시대
클림트의 그림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은 비난하기도 했지만

 유명한 조각가인 로댕은  베토벤 벽화를 보고 '너무나도 비극적이고

너무나도 성스러운 작품'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1907년 그는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비잔틴 미술의 영향을 받아

 황금빛 물감과 금박이 등장하는 '황금시대' 라고 말 할 수 있는 그림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자연을 즐기다 떠난 클림트
그 후 클림트는 풍경화와 초상화를 주로 그렸다.

 

아프리카 풍의 긴 장옷을 걸치고 작업식에서

 그림을 그리며 에밀리아와 아터 호숫가에서 고요한 휴식과 명상을 즐겼다.

1928년 2월 6일 그는 스페인 독감에 걸려 평생 친구 에밀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6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아터 호숫가의 운터라흐의 집들 1916년 110 X 110cm.

 

오스트리아의 벨베데레 갤러리
클림트의 풍경화들은 실제로 있는 것 같지 않다 분명하지 않은 집이나 나무들이

 그림속에 있는 것같다. 클림트는 실제 보이는 풍경을 그대로 그리기보다는

 풍경을 보면서 느낀것을 그렸다 그의 풍경화는 말녀의 작품들로 고흐,

 모네 등의 영향을 부분적으로 받았다.

에밀리 플뢰게의 초상

 

     1893  비엔나 알베르티나 미술관 1902 오스트리아 역사 박물관

 

클림트의 동생은 헬레네 플뢰게와 결혼을 했는데 에밀리는 헬레네 플뢰게의막내동생이다.
클림트와 에밀리는 400통이 넘는 편지를 주고 받았고, 죽는날까지 함께 했다.
클림트는 죽는 순간까지 에밀리를 불러 달라고 말했다.
죽기 전 그가 남긴 풍경화들을 보면 아주 평온하고 자유롭다.
그 그림들은 클림트가 에밀리와 함께 아터 호숫가를 거닐며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휴식을 가졌던 시기에 그려진 것이다.
 

음악 1 1895년 37 x 45cm, 노이에 피나코테크

 


희망2 1907 ~ 1908 뉴욕 현대 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