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쇠라 (Georges Seurat 1859-1891)
제2제정의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쇠라는 사춘기 때부터 그림을 즐겨 그려,
시립 데생 학교를 거쳐 국립미술학교에 입학한다.
앵그르의 제자인 앙리 레만의 아틀리에에서 2년간 수학한 쇠라는
지도 교수의 영향으로 앵그르를 존경하게 되는 한편,
들라크루아와 퓌비스 드 샤반느의 작품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1883년 <살롱>에 쇠라는 첫 작품으로 아틀리에 동창생의 초상을 선보인다.
그 무렵 쇠라는 친지들의 초상을 목탄과 콘테를 이용하여 명암 작업을 하는데,
그중 도미에, 밀레, 르동의 초상화도 있다.
쇠라가 스물 세살이 되던 해에 완성한 <검은 리본>은
치밀히 계산된 단순함의 극치를 명암으로 표현한 걸작으로 꼽힌다.
이후, 쇠라는 보이는 것에 대한 시각적, 과학적 연구를 시작한다.
화폭위에서의 시각적 색채 활용기법은 여기서부터 비롯된다.
낭만적 인상주의에 대립된, 쇠라가 주창한 과학적 인상주의에 시냑과 피사로가 동참한다.
1884년<살롱>심사위원이 거절한 그의 첫 거작 <아니에르에서의 미역감기>는
쇠라가 시냑와 함께 창립한 앙데팡당 협회의 <아데팡당전>에 전시된다.
1886년 제 8회 <인상파전>을 평하면서
평론가 펠릭스 페네옹은 신 인상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쇠라가 그 전시에 출품한 작품 <라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의 특성은
점을 화폭위에 병렬하여
풍부하고 견고하며 톤이 빛나는 효과에 따라 관객이 눈으로 직접 물감을 혼합하고,
이미지 요소를 종합, 재구성하도록 유도했다. 바로 이 테크닉,
시각혼합법 덕분에 신인상파라는 용어가 탄생된 것이다.
매년 쇠라는 여름을 노르망디 해안에서 보냈고,
겨울에 그 시기의 작품들을 완성했다.
해변 풍경을 잿빛 광선으로 처리한 그의 작품들로 <옹플뢰르>,
<그라블린>등이 유명하다.
우수에 찬 서정적인 바다 정경을 그린 작품들을 호평했던
평론가들은 쇠라가 야심적으로 묘사한 일상적인 인물화,예를 들면,
<포즈를 취한 여인>같은 작품에 대해서는 비난을 퍼부었다.
쇠라는 1891년 31세를 일기로 급작스럽게 요절한다.
그해<앙데팡당전>에 출품했던 쇠라의<서커스>는 작가의 예술적 유언이 되었다..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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