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스크랩△

[스크랩] 딸과 함께 생각하는 성폭력 방지방안

행福이 2006. 2. 26. 18:47

1. 마중

오늘도 텔레비전 뉴스 시청을 마치니 밤 10시가 되었습니다. 나는 서둘러 집을 나섭니다. 초겨울의 찬바람이 어깨를 오싹 움츠리게 합니다. 중학교 1학년인 딸애는 학교공부를 마친 후 다시 집에서 1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학원에 다닙니다. 12월 중순의 밤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모두 바쁘게 걸음을 옮깁니다.

길가에서는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머슴애 둘과 여자애 둘이 담배를 꼬나물고 키득거립니다. 또 맞은편 도로에는 스무 살 남짓한 사내들이 벌써 혀가 꼬부라져서 욕지거리를 주고받습니다. 나는 애써 외면을 합니다. 학원 앞거리에서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은 참 지루합니다. 겨우 5분이나 10분 남짓인데도 눈길을 둘 곳이 마땅치 않습니다.

마침내 딸애와 친구가 쪼르르 달려 나옵니다.

“오늘은 아버지가 나오셨네요. 친구가 무서울 테니까 오늘은 친구 집 쪽으로 해서 가요.”

딸애와 그의 친구는 학원에서 일어난 일들을 재잘거립니다. 참 할 말들이 많은 나이인가 봅니다.

2. 호루라기를 불어라

밀양사건이 일어난 이 후 딸애의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여학생들을 모아서는 몇 번이고 조심할 것을 당부했다고 합니다. 또 수시로 여성회관에서 나온 선생님이나 보건선생님이 성교육을 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나는 미덥지가 않습니다.

조용히 딸애를 불러 거실에 마주 앉았습니다.

“얘야! 만약에 네게 낯선 남자가 접근해서 끌고 가려 한다면 넌 어떻게 하겠니?”

딸애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합니다.

“그냥 패면 되지요. 또 휴대폰에 '알라딘 서비스'가 있어서 걱정 안 해도 돼요.”

알라딘이라는 서비스는 'E'버튼을 누르면 긴급통화가 되면서 사진 및 위치가 전송되는 그런 시스템인 모양입니다. 그러나 다급한 상황에서 언제 휴대폰을 꺼낼 수 있으며, 무지막지한 사람들이 있는, 주눅이 든 상태에서 어떻게 그 버튼을 누를 수 있을까요. 차라리 정해진 버튼을 누르면 경고음과 함께 '도와주세요'라는 멘트가 반복해서 나오면 오히려 효과가 있지 않을까요.

조선시대의 여인들은 은장도에 온갖 무늬와 꽃을 넣어 평소에는 장식용 노리개로 사용하다가 긴급한 경우 호신용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제 생각에는 호루라기가 은장도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호루라기를 여학생들의 취향에 맞게 예쁘게 디자인하여 목걸이나 반지로 만들든지, 아니면 교복의 상의 호주머니, 휴대폰 등에 달고 다닐 수 있도록 자그마하게 만든다면 여학생들이 큰 부담 없이 지니고 다니지 않을까요.

또 학교에서도 호루라기를 무상으로 배포하고, 언론기관에서 캠페인이라도 벌여 준다면 그 호루라기소리만으로 청소년이 성폭력에 노출되는 위험은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우선 나부터 내일 당장 딸애에게 호루라기를 선물할 생각입니다.

나는 다시 딸애에게 부탁합니다. “항상 큰 길로 친구들과 함께 다니고, 낯선 사람이 아는 척하더라도 따라가기 전에 일단 의심하고, 호기심으로 판단을 그르치지 말고, 매사에 조심해라.”

3. 의논할 상대를 만들어라

“그렇다면 얘야! 만약에 무슨 일을 당하였다면 어떻게 하면 되겠니?”

딸애는 또 쉽게 대답합니다.

“아버지께 말씀 드릴게요.”

정말 그렇게만 해 준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육체적인 상처야 세월이 지나면 아물겠지만 자칫 마음을 다친다면 평생을 가슴에 상처를 담고 살아야할지도 모릅니다.

“아버지! 그런데 여성회관에서 나온 선생님이 그러는데 '선녀와 나무꾼'에서 나무꾼이 나쁘다고 했는데 저도 그런 것 같아요. 나무꾼은 선녀의 옷을 숨기고 억지로 결혼을 해서 애를 낳게 했잖아요. 또 어떤 언니는 임신을 해서 숨기다가 결국 애를 낳아서 화장실에 버린 일도 있대요.”

“그래 미리 어른들과 상의를 할 수 있다면 그 상처를 적게 할 수 있단다. 아버지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우리 공주님 편이 될 테니 아버지를 너의 전속 상담원으로 임명해다오.”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기에 누군가에게 자기의 고민이나 기쁨을 부담 없이 털어 놓을 수 있는 상담원이 있다면 상처는 생채기가 되고 그 흔적마저 곧 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딸애는 잠이 들었습니다. 저는 가만히 딸애의 이마를 만져봅니다. 세상 사람들을 믿지 못하도록 가르치는 아버지의 마음이 못내 쓰라립니다.

 

- 위 글은 1년전 '밀양사건'이 일어난 후 <오마이뉴스>에 적었던 글입니다. 이번 사건으로 여론은 한나라당의 방안대로 성폭력범에게 '전자팔찌를 만들어 채우자!' 또는 '화학요법으로 그 기능을 못하게 하자!'는 등 강력한 대책을 모범답안으로 내놓고 있습니다. 물론 나름대로의 합리성과 설득력은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어쩌면 여론에 부응해서 인기에 영합하는 미봉책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성폭력범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는 있고, 행복추구권도 있습니다. 그들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인격을 제한하거나 박탈할 권리는 아무도 없습니다. 오히려 판결을 하면서 장기적인 보호관찰처분(보호관찰관에게 신고를 하고 정기적으로  심사를 받게 하는 것)과 수강명령을 받게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지금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성폭력사건에 대한 보다 장기적인 대책을 세울 때입니다. 

출처 : 시사
글쓴이 : 들풀 원글보기
메모 :

'화제*스크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절제된 아름다움  (0) 2006.02.27
[스크랩] 섬진강의 봄  (0) 2006.02.27
[뉴스]커플우산  (0) 2006.02.22
[스크랩] 대 자연의 공포  (0) 2006.02.21
[해외]50억원짜리 다이아 박힌 초코렛  (0) 2006.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