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곤 실레(Egon Schiele)의 작품세계
에곤 실레(Egon Schiele)
에곤 실레는 보기 드문 미남인데다가 화가다운 데를 찾기 힘들었다.
머리는 단정했고, 하루도 수염을 깎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손톱은 항상 말끔하였으며 가장 빈곤할 때에도
궁색해 보이는 옷은 절대 입지 않았다.
그는 말쑥하게 차려입고, 돈을 헤프게 쓰고 다니면서도
화가의 고단한 삶,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추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안락하고 평온한 삶을 원했다.
크림트 (Klimt)의 제자였던
에곤 실레(Egon Schiele1890- 1918 )는 28살에 요절한 젊은 화가로
본인의 자화상을 많이 그렸을 만큼 자신을 무척 사랑했다고 한다.
크림트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색감이 굉장히 화려하며 직선적인 느낌을 준다.
결국 자신에게 지극히 헌신적이었던 연인을 버리고
부르주아 가정의 여인을 선택하여 결혼한다
에곤 실레는 1890년 6월 12일 다뉴브 강변의 튤린에서 태어났다.
비엔나 근방에 있는 이 소도시의 역장이 실레의 아버지였다.
실레의 드로잉 감각은 일찍부터 현저하여,
그는 소년기의 대부분을 연필로 그림 그리는 일로 보내었다.
1907년, 그의 드로잉을 당시 이름 높던 선배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에 보일 기회가 주어졌다.
클림트는 소년의 비상한 재능을 알아보고 후원했다.
클림트의 아르 누보 양식과 소재의 영향은
1909년까지의 실레의 작품에서 현저히 보인다.
스승의 우아하고 장식적인형상을 떠나서,
실레 자신의 표현적인 스타일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10년경에 이르러서였다.
화가로서의 명성이 높아가던 참에,
실레는 노이렝바하 감옥에 24일간 갇히고 마는데,
죄명은 도덕과 꾐으로,
모델로 섰던 가출 소녀가 그를 고발했던 것이었다.
재판 과정에서 판사는 실레의 드로잉 한 점을 불에 태워,
일찍이 그의 부친이 실레에게 가한 모독감을 일깨우게 했다.
감옥살이 경험은 실레에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겨
그 후로 실레의 성격과 예술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거의 철두철미 은둔적이 되었고 그리고
자신을 수도승이나 은둔자로 그린 초상화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내가 먼저 사망하고,
실레는 사흘 뒤인 10월 31일 밤에 아내 뒤를 따랐다.
실레가 최후로 남긴 작품은 죽어가는 아내를 그린 소묘였다.
사망 때까지, 에곤 실레는 선과 색채를 대가적인 솜씨로 다를수 있게 되었고,
3천여 점에 이르는 드로잉과 약 3백 점에 이르는 회화를 남겼다,
실레의 예술의 내용은 대단히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실레의 자화상은 밝혀진 것만으로도 100점이 넘는데,
이는 실레가 내면세계의 표출에 있어 자기표현을 중시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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