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날의 편지 .. 이해인
모랫벌에 박혀 있는
하얀 조가비처럼 내 마음속에 박혀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슬픔 하나
하도 오래되어 정든 슬픔 하나는 눈물로도 달랠 길 없고
그대의 따뜻한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내가 다른 이의 슬픔 속으로 깊이 들어갈 수 없듯이
그들도 나의 슬픔 속으로 깊이 들어올 수 없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지금은 그저
혼자만의 슬픔 속에 머무는 것이
참된 위로이며 기도입니다
슬픔은 오직 슬픔을 통해서만 치유된다는
믿음을 언제부터 지니게 되었는지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항상 답답하시겠지만
오늘도 멀찍이서 지켜보며 좀 더 기다려 주십시오
이유없이 거리를 두고 그대를 비켜가는 듯한 나를
끝까지 용서해 달라는
이 터무니 없음을 용서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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