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그리움♤

성탄절(크리스마스)시 모음

행福이 2009. 12. 18. 17:49

성탄절 / 양광모

산타를 기다리지 마세요.
누군가에게 산타가 되세요.
신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우리도 산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이 세상 가장 따뜻하고
붉은 우리의 심장이 만드는 것.
눈을 기다리지 마세요.
누군가에게 눈 같은 사람이 되세요.

*양광모[사람이 그리워야 사람이다] 중에서-

성탄절 가까운 / 신경림

살아오면서 나는
너무 많은 것을 얻었나 보다
가슴과 등과 팔에 새겨진
이 현란한 무늬들이
제법 휘황한 걸 보니
하지만 나는 답답해온다.
이내 몸에 걸친 화려한 옷과
값진 장신구들이 무거워지면서
마룻장 밑에 감추어놓았던
갖가지 색깔의 사금파리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교정의 플라타너스 나무에
무딘 주머니칼로 새겨 넣은
내 이름은 남아있을까
성탄절 가까운
교회에서 들리는 풍금소리가
노을에 감기는 저녁
살아오면서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버렸나 보다...


크리스마스와 우리 집 / 김현승

동청(冬靑) 가지에
까마귀 열매가 달리는
빈 초겨울 저녁이 오면
호롱불을 켜는 우리 집.

들에 계시던 거친 손의 아버지,
그림자와 함께 돌아오시는
마을 밖의 우리 집.

은접시와 이층으로
오르는 계단은 없어도,
웃는 우리 집.
모여 웃는 우리 집.

소와 말과
그처럼 착하고 둔한 이웃들과
함께 사는 우리 집.

우리 집과 같은
베들레헴 어느 곳에서,
우리 집과 같이 가난한
마음과 마음의 따스한 꼴 위에서,

예수님은 나셨다.
예수님은 나신다.

성탄제 / 김종길

어두운 방 안엔
바알 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 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화이트 크리스마스 / 나태주

크리스마스이브
눈 내리는 늦은 밤거리에 서서
집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는
늙은 아내를 생각한다

시시하다 그럴 테지만
밤늦도록 불을 켜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빵가게에 들러
아내가 좋아하는 빵을 몇 가지
골라 사들고 서서
한사코 세워주지 않는
택시를 기다리며
20년 하고서도 6년 동안
함께 산 동지를 생각한다.

아내는 그동안 네 번
수술을 했고
나는 한번 수술을 했다
그렇다, 아내는 네 번씩
깨진 항아리고 나는
한번 깨진 항아리다.

눈은 땅바닥에 내리자마자
녹아 물이 되고 만다.
목덜미에 내려 섬뜩섬뜩한
혓바닥을 들이밀기도 한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이브 늦은 밤거리에서
한번 깨진 항아리가
네 번 깨진 항아리를 생각하며
택시를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성탄절의 촛불 / 박목월

촛불을 켠다.
눈을 실어 나르는 구
위에서는 별자리가
서서히 옮아가는 오늘 밤
크리스마스이브에
눈이 내리는 지상에서는
구석마다 촛불이 켜진다.
믿음으로써만
화목할 수 있는 지상에서
오늘 밤 켜지는 촛불
어느 곳에서 켜든
모든 불빛은
그곳으로 향하는 오늘 밤
작은 베들레헴에서
지구 반 바퀴의 이편 거리
한국에는 한국의
눈이 내리는 오늘 밤
촛불로 밝혀지는
환한 장지문 촛불을 켠다.

성탄 전야 / 정재영

기별 없는 흰 눈을
속도 없이 기다린다.

북새통 거리
소식(消息) 텔레비전은
난청(難聽)으로 혼자 바쁘고

선이자(先利子) 빚쟁이
독촉장(督促狀)처럼 날아온
멀리 사는 애들 성탄카드 앞에서
아내는 낡은 성경(聖經)을
소리 없이 읽지만
정작 기다리는 것은
천사(天使) 소리 대신 문(門) 소리다
눈 없이 더 차가운 날

아내에게 아무 소식(消息)
되지 못하는 겨울이 된 나는
이제는 흐르다 멈춘
식어버린 용암의 무거운 고요
아내와 문만 번갈아 쳐다본다.

크리스마스 카드 / 박송죽

미국에서 그려 보낸
다섯 살 난 손녀의 그림 속에는
생명의 빛과
우주의 행복을 운반해 주는
아기 예수가 숨 쉰다.
티 없이 맑고 순수한
첫눈 뜬 황홀한 평화로
베들레헴의 말구유가 아닌
그리움으로 銀河의 다리를 놓고
흰 눈으로 내리는 축복의 탄생.

수정 빛 맑은 눈동자 속에
무지개로 열리는 세상 빛이
아름답다 못해
무거운 중량으로 다가와
영혼의 이랑 이랑마다
출렁이는 물결로 번져
가슴 뜨겁게 적셔주는
이 강렬한 생명의 빛.

미국에서 그려 보낸
다섯 살 난 손녀의 그림 속에는
우주의 생명의 신비가
축복으로 숨 쉰다.

아름답고 하얀 메리 크리스마스 / 박택진

푸릇한 계절에
프리지어 향기로
다가온 아름다운 임들
한 장만을 남기고 기쁨과
아픔의 시간이 가고 있습니다

어느샌가
따뜻한 온기가 되어
다가온 임들

어우러지며 따뜻하고
사랑 가득한
향기로운 만남이 되고 싶습니다

거리마다
넘실대는 하얀 눈꽃의 향연
문풍지에 스치는
바람결에 꿈결 인양
그리워지는 마음들
햇살 닮은 빛 고운 임들을 그리며

향기로운 마음 머금고
울려 퍼지는 새벽 종소리를 듣습니다
늘 예의로써 안부 묻고 사랑 나누는
환희와 희망을 주는 일들만이
가득하시길 기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