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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이라는 말(言) - 이기주

행福이 2024. 1. 21. 05:25

"그냥" 이라는 말(言) - 이기주


버스 안에서
일흔쯤 돼 보이는 어르신이
휴대전화를 매만지며 '휴~'하고
한숨을 크게 내쉬는 모습을 보았다.

어찌 된 일인지
창밖 풍경과 전화기를 번갈아
바라보기만 할 뿐 통화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있었다.

10분쯤 지났을까.
어르신은 조심스레
전화기를 귀에 가져다 댔다.


우연히 통화내용을 엿들었는데
시집간 딸에게 전화를 거는 듯했다.


"아비다, 잘 지내? 한 번 걸어봤다...?

대개 부모는,
특히 자식과 멀리 떨어져 사는
부모는 "한 번 걸었다"는
인사말로 전화 통화를 시작하는
경우는 상투적인 멘트를 꺼내며
말문을 여는 것은 아닐까.


행여나 자식이
"아버지, 지금 회사라서
전화를 받기가 곤란해요"하고


말하더라도 "괜찮아,
그냥 걸어본 거니까"라는
식으로 아쉬움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덤덤하게 전화를
끊을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냥 걸었다는
말의 무게는 생각보다 무겁고
표현의 온도는 자못 따듯하다.


그 말속에는
"안 본 지 오래됐구나.
이번 주말에 집에 들려 주렴"

"보고 싶구나. 사랑한다"
같은 뜻이
오롯이 녹아있기 마련이다.


"그냥"이란 말은 대개
별다른 이유가 없다는 걸
의미하지만,

굳이 이유를 대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히 소중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후자의 의미로
"그냥" 이라고 입을 여는 순간

'그냥' 은
정말이지 '그냥' 이 아니다.


*이기주의(언어의 온도)중에서 -